일단 통상 무협지에서는 무공을 정공(正功), 마공(魔功)으로 나눈다. 중간에 여러가지 계열로 나뉘긴 하지만 크게 나누면 저런 계열이 되리라고 본다.
1. 정공(正功)
흔히 정공무공, 정종공부의 줄임말로 쓰이는 단어로 내부를 뜯어보면 통상 도가(道家)계열과 불가(佛家)계열로
나뉠 수 있다. 통상 무공을 나눌때는 내가와 외가로 나뉘는데, 내가(內家)라 함은 내장기관을 단련하여 기를 키우는데 중점을 두고, 외가(外家)라 함은 신체와 근골을 단련하여 기를 키우는 두개의 길로 볼 수 있다.
일단 도가는 통상적으로 우화등선을 꿈꾸는 형태가 묘사되는 경우가 많으며 본인이 지금까지 읽은 소설중에서 도가를 제일 잘 표현한 소설은 설봉님의 산타와 한백님의 무당마검이 아닌가 싶다.
"돌고 돌아 태극인 것을, 그저 천도에 어긋나지 않으면 되는 것이야."
이것이 도가의 경지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말이 아닐까. 통상적으로 정종의 공부는 바르고 곧되, 진척이 느리나 그 끝이 창대하다라는 형태로 구축되는 경우가 많다. 대도무문..이랄까.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길인 듯 싶다.
불가의 공부는 통상 대자대비라고 정의되며 이것은 사람을 살생치 않고 제압하며 마음의 수양을 쌓고 궁극적으로 해탈을 노리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천룡팔부의 노승이야말로 불가 무공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인물이 아닐까 싶다(수련과 내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불도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 역근경을 대성하는 방법.).
정공은 단순하지만, 대성하기 어렵고, 지속적인 노력을 쌓아올림으로서 빛이 나는 공부다.
의천도룡기에서 장삼봉이 창안한 태극권을 아는 사람이라면 정종 무공의 극치에 대해 감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 기억했느냐?"
"절반 정도 기억합니다."
"이번에는 어떠냐?"
"다 잊었습니다."
"좋다. 아주 좋구나!"
2. 마공(魔功)
정공과는 반대되는 개념의 공부. 속성법등으로 묘사되며 통상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 무공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엄청나게 패도적으로 오직 위력만을 추구하는 형태역시 이러한 형태에 포함되는 경우가많다.
반대로 뒤집어보면 일부러 심마를 불러 일으켜 심마와 싸워 이김으로서 스스로를 단련하는 무공이 있다면, 이 것 역시도 마공에 포함되지 않을까?
심마와 싸운다는 것, 그 과정에서 승리한다면 분명 커다란 성취로 다가오는 것이고, 마음을 흐리게 하는 것은 저런 목적에서 출발할 수 있다.
또한 단순히 힘만을 추구하여 본능만을 극대화 시키고 인간성을 포기하는 무공도 있을 수 있다.
어쟀든 마공은 창조하다보면 재미있는 구상이 가능하고, 어떠한 형태로도 변형이 가능하다. 이 것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타입.
간혹 가지치기 개념으로 사공(邪功)이 나오지만, 이것 자체만으로는 마공의 영역에 포함될 듯 하지만...
사실상 정공이나 마공은 출발점이 다르지만 추구하는 바가 같다면, 도달하는 영역도 같을 것이다. 다만 정공에 비해 마공은 익히는 자의 정과 기에 영향을 주어 가야 할 길을 비틀리게 하여 길을 잃게 만드는 위험이 더 높을 것이다.
상상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나의 무공에 대한 관점은 정공이던 마공이던 어쟀든 하나의 추구점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개념이다. 물론 무공자체가 시작부터 잘못되어 있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겠지만.
인간이 아무리 무공을 익힌다고 해도, 맹수와 맨손으로 싸울 수는 없다. 위대한 투사였던 최영의 노사조차 황소가 한계점이였으니까(물론, 인간이 맨손으로 황소를 때려잡은 것은 엄청난 일이다).
다만 상상속에서 인간은 무공이라는 개념을 통해 어느정도의 초월을 시도할 수 있다. 도가 무공의 극점이라는 탈인간을 통한 신선의 경지 추구가 그러한 맥락이리라.
1. 정공(正功)
흔히 정공무공, 정종공부의 줄임말로 쓰이는 단어로 내부를 뜯어보면 통상 도가(道家)계열과 불가(佛家)계열로
나뉠 수 있다. 통상 무공을 나눌때는 내가와 외가로 나뉘는데, 내가(內家)라 함은 내장기관을 단련하여 기를 키우는데 중점을 두고, 외가(外家)라 함은 신체와 근골을 단련하여 기를 키우는 두개의 길로 볼 수 있다.
일단 도가는 통상적으로 우화등선을 꿈꾸는 형태가 묘사되는 경우가 많으며 본인이 지금까지 읽은 소설중에서 도가를 제일 잘 표현한 소설은 설봉님의 산타와 한백님의 무당마검이 아닌가 싶다.
"돌고 돌아 태극인 것을, 그저 천도에 어긋나지 않으면 되는 것이야."
이것이 도가의 경지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말이 아닐까. 통상적으로 정종의 공부는 바르고 곧되, 진척이 느리나 그 끝이 창대하다라는 형태로 구축되는 경우가 많다. 대도무문..이랄까.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길인 듯 싶다.
불가의 공부는 통상 대자대비라고 정의되며 이것은 사람을 살생치 않고 제압하며 마음의 수양을 쌓고 궁극적으로 해탈을 노리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천룡팔부의 노승이야말로 불가 무공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인물이 아닐까 싶다(수련과 내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불도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 역근경을 대성하는 방법.).
정공은 단순하지만, 대성하기 어렵고, 지속적인 노력을 쌓아올림으로서 빛이 나는 공부다.
의천도룡기에서 장삼봉이 창안한 태극권을 아는 사람이라면 정종 무공의 극치에 대해 감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 기억했느냐?"
"절반 정도 기억합니다."
"이번에는 어떠냐?"
"다 잊었습니다."
"좋다. 아주 좋구나!"
2. 마공(魔功)
정공과는 반대되는 개념의 공부. 속성법등으로 묘사되며 통상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 무공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엄청나게 패도적으로 오직 위력만을 추구하는 형태역시 이러한 형태에 포함되는 경우가많다.
반대로 뒤집어보면 일부러 심마를 불러 일으켜 심마와 싸워 이김으로서 스스로를 단련하는 무공이 있다면, 이 것 역시도 마공에 포함되지 않을까?
심마와 싸운다는 것, 그 과정에서 승리한다면 분명 커다란 성취로 다가오는 것이고, 마음을 흐리게 하는 것은 저런 목적에서 출발할 수 있다.
또한 단순히 힘만을 추구하여 본능만을 극대화 시키고 인간성을 포기하는 무공도 있을 수 있다.
어쟀든 마공은 창조하다보면 재미있는 구상이 가능하고, 어떠한 형태로도 변형이 가능하다. 이 것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타입.
간혹 가지치기 개념으로 사공(邪功)이 나오지만, 이것 자체만으로는 마공의 영역에 포함될 듯 하지만...
사실상 정공이나 마공은 출발점이 다르지만 추구하는 바가 같다면, 도달하는 영역도 같을 것이다. 다만 정공에 비해 마공은 익히는 자의 정과 기에 영향을 주어 가야 할 길을 비틀리게 하여 길을 잃게 만드는 위험이 더 높을 것이다.
상상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나의 무공에 대한 관점은 정공이던 마공이던 어쟀든 하나의 추구점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개념이다. 물론 무공자체가 시작부터 잘못되어 있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겠지만.
인간이 아무리 무공을 익힌다고 해도, 맹수와 맨손으로 싸울 수는 없다. 위대한 투사였던 최영의 노사조차 황소가 한계점이였으니까(물론, 인간이 맨손으로 황소를 때려잡은 것은 엄청난 일이다).
다만 상상속에서 인간은 무공이라는 개념을 통해 어느정도의 초월을 시도할 수 있다. 도가 무공의 극점이라는 탈인간을 통한 신선의 경지 추구가 그러한 맥락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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